2월, 좋은 인연도 흘려 보내야 한다.

2025. 2. 23. 21:30기록일지/2025

'다시 간 하노이 그리고 권태기'

  두 번째로 간 하노이, 내가 알던 하노이와 달랐다. 신호등이 생겼다. 무질서 교통체증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정지선 뒤로 멈춰 신호를 기다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놀라웠다. 2년 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롱베이는 몇 달을 지내야 섬을 돌아볼 수 있는 규모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동굴과 섬을 당일치기로 돌았다. 하롱베이로 출발하기 전, 픽업 장소에 도착했는 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사기당한 건가 싶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픽업돼서 가는 데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연락 수단을 빠르게 알아봤다 멘붕 상태였다. 전날에 온 메일에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다. 전날 오후에 공항으로 출발하느라 메일이 온지도 몰랐다. 카톡으로 연락을 하니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버스가 막혀서 잠깐 기다려달라 했다. 어디서 온 건지 깜짝 놀랐지만 고마웠다. 그 사람이 모든 픽업을 관리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부담이 덜 했을 텐데 가족하고 와서 부담이 높았다. 연락 안 됐으면 초비상이었다. 계획대로 첫날이 진행돼서 다행이었다.
  보슬비가 계속 내려서 앞머리가 죽었다. 초최한 모습으로 다녔다. 하롱베이는 사진하고 똑같았다. 다만 안개가 추가돼서 분위기 있었다. 무림 세계로 온 느낌이었다. 단체로 밤부보트를 타고 이동했는 데 다음에 온다면 카약을 타 보고 싶다. 밤부와 카약의 교통사고가 스릴 넘쳐 보였다.
  카메라 흥미가 낮아진 건지 권태기가 온 건지 잘 쓰지 않았다. 폰으로 다 할 수 있어서 그런 건지, 재방문이어서 그런 지 촬영할 장면이 없었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일상 사진을 많이 찍고 왔다. 각 잡고 촬영한 게 아닌 순간을 주로 사진으로 담았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없었다.

 

'2년 만에 재방문한 맥주집'

  분짜가 왜이리 맛있는지, 오랜만에 먹어도 예전에 처음 먹어본 그 느낌이 남아 있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오감을 자극하면 됐다. 하노이에는 종업원이 많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대부분 폰을 하고 있었다. 홍보를 안 해도 올 사람은 온다는 생각인 건가. 맥주거리를 가면 대부분 알바생들은 청소년들이었다. 호객행위를 열심히 한다. 호객행위를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본업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다만 한국어로 호객을 할 때가 있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알아낸 건지 흠칫하게 된다. 
  2년 전에 방문했던 맥주 매장으로 갔다. 친분 있던 알바생을 보고 싶어서 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알바생한테 번역된 글을 보여주면서 물어봤다. 모르는 알바생이라 한다. 매장을 잘못 찾아온 건지 사장이 바뀐 건지 싶었다. 베트남 오토바이도 신호를 지키게 됐는데 2년이면 많은 게 바뀔 만했다. 원래 방문한 매장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새로운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은 다른 종업원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키 작은 남자 알바생, 내가 찾는 사람하고 일치했다. 전달받은 소식은 놀라웠다. 당시 그 친구는 17살이었다. 지금은 가게 일 그만두고 결혼하러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와우. 지금 나이로 19살인 친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노이의 두 면'

  마지막 날, 하노이 시내에서 10km 벗어난 시장으로 갔다. 약재 냄새 때문인지 머리가 불편했다. 허름한 2층 건물에 밝지 않은 조명, 벗겨진 페인트, 우리나라 지하 상가보다 허름했다. 규모는 컸지만 시장 운영을 하는 건 지 다른 목적인지 의심스러웠다. 관광객은 우리 밖에 없었다. 돌아다닐 때마다 수군대는 말소리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쳐다보는 시선, 지나가면 조용해지는 순간을 느끼면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하나의 관찰대상이 된 느낌이었다. 광장으로 내려가니 전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전부 현지인이었다. 왜 이리 사람이 많아졌는지 생각해 봤다. 아, 그들에게는 이곳이 이마트였던 것이다. 하노이의 반대 면을 본 순간이었다. 하노이 시내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정돈된 모습을 봤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더 벗어난 이곳이 베트남이었다. 현지인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우리가 시장이라 느낄 지라도 그들에게는 백화점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계급론, 수저론, 신분제 등등. 왜 그런 제도, 이론이 생겼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프랑스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처음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과 같다고 생각했을까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눈에 보이는 건 현실이었다. 삶의 풍요로움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다들 아이폰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 확실히 본능은 누구나 비슷했다.

 

'찔러보기 달인이 되어 보자'

  서류지원을 시작했다. 한 명만 걸려라 찔러보고 있다. 연락을 보내고 기다리는 중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집착하면 안 되는데 이력서를 열람했다는 알림에 설레고 있다. 답장이 오겠지? 기대하고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은 커진다. 후기를 들어보면 보통 일주일이 지나서 아무 연락이 없다면 떨어진 거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선행학습을 해서 조금은 무덤덤하다. 서류지원을 난사하는 것보다 점사로 끊어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한 번 지원하면 일주일 기다리고 그동안 보완하고 다시 지원하는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작업해서 업데이트된 이력서로 지원하는 게 타율이 좋을 것 같았다. 무지성 난사를 하면 어느 회사에 지원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거 같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지원하고 있다. 그것도 공고 마감일 순으로. 해보니 공고 마감하는 회사도 얼마 없다. 세운 기준에 맞춰 회사 거르고 나면 열 곳도 되지 않는다. 열 곳 이하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전부 합격은 조금 힘들겠지만 5 곳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 지원하는 회사도 5인 미만이면 지원하지 않는다. 면접 경험을 위해서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싶다. 심지어 거리도 멀면 그냥 공부를 더 하겠다. 
  언제까지 지원하게 될 지 모르지만 올해 안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어디라도 좋으니 빨리 되면 좋겠다. 막상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강원도 회사로 지원할 때 조금 흠칫했다. 얼른 과거의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와서 보니 말린 망고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