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한달 남은 느낌

2020. 8. 11. 17:30[군] 기록일지

8월 1주 차

2주간의 호텔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에서 온 형과 재회했다. 평일 오후에는 주로 병원, 음식점을 가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미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 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서로 얘기했다. 재미있었던 일화들을 조리 있게 말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말이 잘 안 나왔다. 비가 많이 내려서 밖에는 많이 못 나갔는데 집에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1, 2주 차에는 형과 엑스포를 가며 같이 지냈다.

8월 2주 차

입대까지 20일이 깨지고 있다. 군대를 가면 영어공부, 운동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검색해보면 전역 후에는 공부보단 운동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아직 안 가봐서 모르지만 영어공부보다는 운동에 큰 비중을 둘 생각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득근을 할지 알아보고 있다. 나는 헬린이라 루틴이라든지 식단이라든지 어떻게 정하는지 잘 모른다. 공부해서 일산 녹차 근육남으로 전역할 거다.

8월 3주 차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12월로 미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맨몸 운동을 하며 보충제에 관해 알아봤다. 필요한 정보는 메모해놔서 정리만 하면 될 거 같다. 입대 전에 읽고 싶었던 책도 다 읽었고 휴학계도 처리되면 이제 끝이다. 마지막 주에는 방 정리를 하고 이발소로 가야겠다. 지난주에 재미있었던 일은 금요일에 촬영장을 간 것이다. 나는 거의 감독 역할만 하다 보조를 해봤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 발짝 뒤에서 움직여서 그런지 촬영 환경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8월 4주 차

입대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한자리 수가 되자 막 와 닿지는 않는데 초초해진다 라는 느낌이 살짝 든다. 이번 주에는 할 일이 너무 없었다. 정리도 거의 되어 있었고 한 거라곤 어떤 물건을 들고 갈지 정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냥 시간을 날린 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나름 연출 공부를 위한 영화 시청과 투자를 위한 경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서 낭비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오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요즘 군대는 캠프라 그러는데 그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전역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도 궁금하다. 22년에 나오면 통일이 되어 있고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아무런 감정이 안 느껴지는 건 아마 집에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만약 혼자였다면 감정적으로 변했을 거 같다.

8월 30일 (입대 D-1)

머리를 잘랐다. 이렇게 많이 자른 적은 처음이다. 거울을 볼 수 없었다. 화면에 비치는 머리, 건물에 반사되는 내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자신감 없이 계속 머리를 숙이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기 전 날 친구들과 만나서 치킨을 먹고 사진 찍은 뒤에 헤어졌다. 헤어진 지점이 우리 집 문 앞인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마저 못 만난 친구들하고 연락을 주고받은 뒤에야 진짜 내가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무를 하고 있는 형들이 있는데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 걱정 많이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 후 긴장이 한층 풀렸고 이제 입대일이 아닌 전역일만 기다리면 된다. 아주... 좋다...


전체적으로 코나때문인지 덕분인지 집에서 입대일을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 않았고 슬프지 않았다. 가끔 노래를 듣고 울컥하긴 했지만 그 순간만 그랬다. 아마 집에서 아무런 감정이 안 든 이유는 벽 건너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감정을 제어했다. 아무래도 울면 부모님이 더 걱정하시고 형이 놀리기 때문이다. 이제 입대 하기까지 몇 시간 안 남았다. 들어가면 전역일을 세고 몸집을 키울 일만 남았다. 20인성, 22인성이 많이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세상 또한 올해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에 군대를 가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문자로든 잘 갔다 오라고 해주면 좋겠다.

군대를 가는 사람들마다 어떤 마음이 들지 몰라도 한통의 문자는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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