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이렇게 청춘이 끝나다.

2023. 3. 25. 22:20기록일지/2023

"사기당한 기숙사"

 개강에 맞춰 기숙사에 입주했다. 왜 이리 더러운 건지. 노가다 갔던 숙소보다 심했다. 회색 먼지, 거미줄, 벌레 시체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은 2층 침대다. 기숙사를 지을 때 아니 가구를 배치할 때 천장을 고려하는 건 기본 아닌 가? 이 대학은 생각이란 걸 하는지 궁금하다. 저 2층을 올라가려면 포복을 해야 된다. 군대에서 안 하던 포복을 여기서 내가 잠을 자려고 해야 된다니 어이가 없다. 내려갈 때도 엎드려서 가야 된다. 내가 키가 커서 그런 게 아니고 초등학생이 와도 이건 머리부터 박고 올라간다. 심각하다. 하루 자봤는데 누가 내 앞에 그리 가까이에 있는 게 처음이다. 불편하다. 하지만 15주 동안 그래야 된다. 하. 그래도 좋은 점은 바닥이 따뜻하다. 발이라도 따뜻해서 다행이다.

 

"모든 건 숫자" 

 14,000원을 주고 바지 수선을 맡겼다. 수선은 교복 바지 기장 밖에 안 해본 내가 통 수선이라니, 잘 될지 걱정이었다. 통을 줄이는 것은 첫 모험이었다. 원래 난 슬림 핏을 원했다. 하지만 구매한 바지는 일자였다. 바지를 처음 입었을 때부터 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기장이 맞아서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로 반년 뒤, 모험을 하고자 큰돈을 내고 수선을 맡겼다. 사장님이 종아리 부분만 줄이시면 어떡하지란 별 고민을 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이틀 뒤 수선한 바지를 받아서 보니 핏이 그럴싸했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통과, 바지 착샷을 보니 합격이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바지를 갖게 됐다. 1cm를 줄인 건데 바지가 이리 달라 보일 줄이야. 처음에 바지 맡길 때 사장님이 이 돈 주고 이 만큼 줄이는 건 아깝다고 하셔서 "더 줄여야 되나?" 걱정스러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14,000원을 주고 내가 원하는 바지를 얻었다. 그 이상 줄였으면 바지를 버리고 다시는 수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겠지. 뭐든지 중요한 건 숫자다.

 

"원래 봄이란 게 있나"

 처음이자 마지막 연합 MT를 갔다.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 그래야 합방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아교육과와 합방! 강제로 취소 돼버려서 너무 가슴 아프다. 시간까지 잡았는데... 그 빌런들만.. 없었으면 봄이 찾아왔을 텐데.. 이렇게 내 2년의 청춘은 마무리되려나 보다. 언제 또 대학생의 순수함을 가지고 풋풋하게 놀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것은 명분인데 순수한 대학생의 명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과거에 얽매인 추한 빌런이 될 뿐이다. 그 누가, 늙은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상위 1%에 속하지 않아서 개연성을 위한 명분이 중요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대학생"이란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명분 반납할 때가 오고 있다. 억울하다. 가장 억울할 때가 언제인지 아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일이 잘못 됐을 때다. 난 가만히 방에 앉아서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 찾아오는 건 방이동 금지였다. 왜 이리 세상이 짓궂을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가만히 있어도 이미 정해진 약속도 무마되는데, 이런 세상 속에서 나한테 봄날이 올까? 아니 애초에 봄이 있었나? 없는 것에 속아 넘어간 건 아닐까.

 

연합 레크레이션 후 숙소 복귀 행군